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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감상문 2020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사무엘 베케트는 아일랜드 작가이지만 그의 생애의 많은 시간을 프랑스 파리에서 보냈다. 그리고 그의 대표작인 <고도를 기다리며>를 프랑스어로 먼저 발표하고 몇 년 후에 다시 영어로 발표하였다. 그는 모국어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디 모국어뿐이겠는가. 우리의 의사소통이라는 것이 항상 그 의미를 충족하지 못하고, 서로가 자신의 독백만을 나열하고 있음을 느끼게 될 때가 얼마나 자주 있는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말이다. 세대 간의 어긋남, 부모와 자식 간의 어긋남, 성별의 어긋남, 이해 관계가 얽혀있는 당사자들 간의 어긋남이 대표적이지만, 사실 모든 관계가 소통의 부재라는 생각이 든다. 갈등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은 '너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내가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훨씬 더 강하다. 그래서 이해받고 싶어 하는 두 사람은 끝없이 평행선을 달리게 되는가 보다. 정말이지 우리는 타자를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이해해 보려고 노력할 뿐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잘 알려진 작품이지만, 실제로 읽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비교적 짧은 작품으로 두 시간  정도에 다 읽을 수 있었다. 고도란 누구인가? 왜 블라디미르(디디)와 에스트라공(고고)은 끊임없이 고도를 기다리는가? 없음으로서 존재하는 고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재함으로 무대를 가득 채운다. 이 작품은 특별한 줄거리도 없고 사건도 없고 그저 동일한 구조로 반복되는 제1막과 제2막이 있다. 그리고 독자는 동일한 형태의 반복이 계속될 것을 직감한다. 그러나 이 반복도 완전히 똑같은 반복은 아니다. 상황과 환경은 비슷하나 약간의 차이가 존재하는데 이 차이는 틈으로서 작용한다. 제1막에서 나뭇잎 하나 없이 앙상한 나무 한 그루였는데, 제2막에서는 그 나무에 몇 개의 나뭇잎이 달려있다. 그리고 포조와 럭키의 등장도 위치가 바뀌어서 등장한다. 즉, 제1막에서는 포조가 럭키를 끌고 왔다면, 제2막에서는 럭키가 장님이 된 포조를 끌고 온다. 이러한 상황 설정은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말하고 있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으로 분석해 볼 수 있다. 역사의 흐름에서 주인과 노예의 관계는 전복이 되지만, 위치만 바뀔 뿐 그 상황은 동일하다. 이는 포조가 말한 "눈물의 양엔 변함이 없다"는 문장으로도 나타난다. 럭키가 울었다가, 고고가 울게 되니 럭키는 울음을 멈춘다. 그러나 눈물의 양은 동일하다. 그들 모두가 울음을 멈추면 또 어딘가에서 다른 누군가가 울게 될 것이다. 웃음도 마찬가지이고. 

 

<고도를 기다리며>는 베케트의 세계사적인 해석과 그의 철학이 잘 묻어나는 최초의 부조리극이다. 기존의 연극적 요소를 파괴하고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고자 하는 몸부림의 한 표현이다. 니체가 말했듯이, 베케트는 기존의 질서와 형식을 부수고, 자신만의 새로운 것을 창조한 것이다. 즉, 낡은 서판을 깨부수고 새로운 서판에 자신의 것을 써 나간 것이다. 그리고 반복되는 인간의 삶을 기다림으로 작품에 녹여냈다. 고도는 영어로Godot라고 표기되는데, God에 ot를 붙인 형태이다. 한눈에 고도가 메시아를 상징함을 알려준다. 기다리는 메시아, 아직 도래하지 않은 메시아, 그래도 끊임없이 계속 기다리는 메시아, 그리고 무신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기다림만 있을 뿐 오지 않을 메시아이다. 또 한편으로 '고도는 죽음이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된다. 작품을 읽고 나면 죽음에 대해 숙고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 우리는 태어났고, 어느 날 우리는 죽을 거요.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아이를 낳는 거지. 해가 잠깐 비추다간 곧 다시 밤이 오는 거요." 그러나 베케트는 그러한 고정된 해석에 저항하였으며 자신도 고도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주장하였다. 그렇기에 고도는 다양한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다. 나에게 고도란 무엇일까? 만나기 위한 기다림일까? 아니면 만나지 않기 위한 기다림일까? 지금 생각할 때 나에게 고도란 진정한 나를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비를 알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불가능이라 하더라도 알아감의 기다림을 멈출 수 없는 것이 바로 나의 삶을 가능케 하는 나의 의지일지도 모르겠다. 

 

가자

갈 수 없어 

왜?

고도를 기다려야지...

 

 

 

2020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