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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감상문 2020

알베르 카뮈 <페스트>

알베르 카뮈는 알제리에서 태어난 프랑스 사람이다. 프랑스에 온전히 속하지도 않았고 알제리에 온전히 속하지도 않은 카뮈의 이방인적인 삶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 <이방인>에 잘 나타난다. 그의 아버지는 카뮈가 어렸을 때 전쟁에서 나가 싸우다가 사망했다. 그래서 그는 청각장애인인 어머니와 엄한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의 삶은 가난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다행히도 그의 재능을 알아본 스승이 두 명 있었는데, 그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카뮈는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니체의 영향을 받았으며 실존주의적인 부조리 작품을 썼다. “부조리”라는 단어는 부조리 에세이 <시지프스 신화>라는 카뮈의 작품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단어이다. 그에게 부조리는 인간과 세상이 만나는 곳에서 발생한다. 삶은 인과적이지 않으며, 예측 가능하지 않고, 논리적이지 않은 부조리의 연속이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부조리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그 의미 없는 삶에 응답하는 세 가지 방식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살과 희망과 반항이다. 인간과 세상의 부딪힘에서, 첫 번째 응답방식인 자살은 부조리를 감당할 수 없어서 인간을 지우는 행위이다. 두 번째 응답방식인 희망은 부조리를 감당할 수 없어서 세상을 지우는 행위이다. 인간의 실존은 고통이며, 삶은 무의미한데 그것을 직시할 용기가 없어서 종교로 도피함으로 희망을 가지는 것이라고 카뮈는 해석한다. 세 번째 응답방식인 반항은 인간과 세상의 부딪힘에서 발생하는 부조리를 인지하고, 삶이 무의미하고 부조리함에도 불구하고 시지프스처럼 묵묵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고 기꺼이 해내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라 할지라도 나의 선택으로 받아들이며 고통을 끌어안고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카뮈는 반항하는 자세라고 하였다. 반항하는 삶은 또한 질문하는 삶이다.  카뮈는 나에게 반항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그의 작품 <페스트>를 통해 추천하고 있다.

 

부조리한 삶에서의 반항을 그리고 있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가 바로 <페스트>이다. 단조롭고 평범한 오랑이라는 도시에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재앙. 페스트. 그 부조리한 상황에서 작품 속의 인물들은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반응한다. 주인공이면서 서술자인 의사 리유는 카뮈 자신이기도 하다. 리유는 페스트에 대항하여 싸우는, 반항하는 삶을 살아가는 대표적인 사람이다. 페스트라는 질병 앞에 속수무책으로 절망하거나(자살, 부조리의 응답방식 1) 덧없는 희망(부조리의 응답방식 2)을 품지 않는다. 그는 그 상황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판단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한다. 리유와 그의 동료들의 노력은 주어진 운명에 반항하는 그들의 삶의 태도이다. 랑베르는 취재차 오랑에 왔는데 페스트로 인하여 도시가 폐쇄되어 그곳에 갇히게 된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곳을 빠져나가려고 노력한다. 랑베르에게 페스트는 자신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그곳을 나갈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도 그들 중의 일부임을 깨닫게 되고 의사 리유를 도와 함께 페스트에 저항하기로 결심한다. 자살을 기도했었던 코타르는 페스트로 인해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도 페스트로 인하여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했음을 느끼고 오히려 그 상황을 즐기는 사람이다. 언제 어디에서나 누군가에게 슬픈 일이 또 다른 사람에게는 기쁨이 될 수도 있다는 부조리의 모습이다. 종교적인 신념이 강한 파눌루 신부는 페스트라는 재앙이 신이 내린 징벌임을 연설하며 회개를 촉구한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깊은 회의에 빠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확고한 신념체계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어서 결국 그는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신념에 의해 의사의 도움 없이 기꺼이 죽음을 맞이한다. 

 

지금 한국을 비롯한 세계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고통받고 있다. 의학이 이렇게 발전한 오늘날에도 질병앞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우리 인간은 속수무책이다. 코로나로 인해 중국 우한은 오랑처럼 도시가 폐쇄되었다. 한국은 전수조사와 방역에 만전을 가함으로써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소설이 2020년 현실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이러한 때에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자신을 파괴하고 절망하고 낙담할 것인가? 세상을 왜곡하는 비현실적인 희망을 붙들 것인가? 아니면 이 바이러스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에 맞게 하나하나 대처하고 행동해 나감으로 저항하고 반항할 것인가? <페스트>를 읽고 나니, 더욱 반항하는 인간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이 어떠하든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내가 할 일을 묵묵히 감당해 나가야겠다. 그 결과가 멋지기 때문이 아니라, 약속이 보장되어 있어서가 아니라, 시지프스가 무의미하고 헛된 일이지만 끊임없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바로 부조리한 세상에서 우리가 취할 바람직한 삶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페스트는 단지 질병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가난과 질병과 재난이고, 전쟁이며, 우리네 삶 그 자체일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삶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바로 페스트를 대하는 자세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향해 가고 있으며, 그 여정의 끝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니까. 탄생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부조리한 삶… 부조리한 삶에서 반항하기를 선택한 인간은 시지프스처럼 산 꼭대기까지 끌어올린 바위가 밑으로 떨어질 때, 그 바위를 향해 내려가면서 웃음을 짓는다. 내려감은 일종의 휴식이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추락욕망을 느끼는 것일까? 산꼭대기에 세운 바위가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더라도 다시 들어 올리기를 쉬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잠시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그 바위가 절정인 꼭대기에 세워졌을 때 나는 지극한 만족과 행복을 느끼게 될 것이며 무의미에서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반항하는 인간의 삶이다. 

 

2020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