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의 왕 그리고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와 그 맥을 같이하는 그리스의 3대 비극작가인 소포클레스의 작품이다. 시간 순서로는 제일 마지막이지만, 실제로 소포클레스는 안티고네를 제일 먼저 발표하였다고 한다.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의 딸이자 여동생이다. 그의 두 오빠인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가 왕위를 놓고 다투다가 결국 모두 사망하고 만다. 왕위를 이어받은 삼촌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의 장례는 성대하게 치러주지만 타국의 군대를 끌어들여 내전을 일으킨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은 길거리에 버려 짐승의 밥이 되게 하라는 국법을 내린다. 그리고 이 명령을 어기는 자는 사형에 처하겠다고 하였다. 이러한 상항에서 안티고네는 여동생인 이스메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오빠의 장례를 치러줌으로 크레온과 대립하게 된다.
안티고네의 이러한 행동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그 당시 죽은 자의 장례를 치러주는 것은 관례였는데, 이는 지상에서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 않으면 그 영혼은 하계에서 결코 평안하게 머무를 수 없다는 그들의 믿음 때문이다. 안티고네는 이를 신의 법이라고 표현한다. 자연법과 같은 이 신의 법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왕이 지정한 나라의 법을 따를 것인가? 그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는 것이다. 합리적인 이스메네는 그들의 힘으로 불가능함을 알고 부질없는 일에 목숨을 걸지 말라고 하지만 안티고네는 결코 그럴 수가 없다. 그녀에게 오빠의 시신을 묻어주는 것은 나라의 법보다 상위의 법으로, 두 법이 충동할 경우에 상위의 법을 따르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죽을 것을 알지만,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안티고네의 모습을 정신분석에서는 죽음충동으로 표현한다. 활짝 피었다가 지는 꽃처럼, 거침없이 타오르다가 꺼져가는 불꽃처럼, 그렇게 내면의 소리에 이끌리어 자신을 위기에 던지는 것이다. 즉, 삶을 파멸로 이끄는 것이다.
이 작품에 나타나는 또 하나의 대립이 있다. 자매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의 대립이다. 안티고네의 오빠에 대한 사랑은 극진하지만 여동생에 대한 사랑은 그리 크지 않은 듯이 보인다. 언니와 함께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묻어주는데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언니가 곤경에 처해 죽게 되었을 때 함께 죽기를 청하는 그녀를 안티고네는 경멸한다. 그 표현에서 보면 동생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행동이라고 보기 어렵다. 안티고네가 생각했을 때 옳은 일, 바른 일은 대한 동기가 없었기 때문일까? 동생까지도 끌어안을 수 있는 모습을 보였다면 더 아름답게 보였을 것 같다. 그렇더라도 나에게 보여지는 안티고네의 삶은 숭고하다. 죽음의 위협에도 굴복하지 아니하고, 꺾이지 아니하고, 그녀는 왕이 제시한 길, 사회가 요구하는 길로 걷지 아니하고, 굳건하게 자신이 만든 길을 걸었다. 크레온의 오만함은 참혹한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안티고네의 죽음 이후, 그녀를 사모하던 크레온의 아들이 그녀를 따라 가고, 아들을 잃은 어머니, 그러니까 크레온의 아내 역시 삶을 포기한다. 말 그대로 비극이다. 안티고네의 이야기는 이후 많은 철학자들에게 의해 인용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외부에서 강제하는 것에 아무런 생각 없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정말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라캉은 순수 욕망을 따르는 삶이라고 하였다.
외부의 시선에 의해 강제된 삶이 아니라 자신이 주인 된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언어에 의해 규정된 틀에 갇혀 그래야 하는 모습을 따라서 살면서 창조성을 잃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안티고네는 적어도 노예의 삶이 아니라 주인의 삶을 살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며 모두 앞에 당당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할 때 자신 안에 있는 순수한 욕망을 따를 때 고통이 따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까지도 끌어안으며 힘에의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면 죽음 앞에서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니체는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말하였다. 영원히 반복된다 하여도 기꺼이 맞이할 수 있도록 그렇게 긍정의 삶을 살 것을 촉구한 것이다. 디오니소스적 긍정, 파괴와 창조의 긍정, 그리고 나의 삶을 긍정하면서 그렇게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채워본다.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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