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노인과 바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말년 작품으로 그에게 노벨 문학상의 영예를 안겨다 준 작품이다. 10년 동안 그렇다 할 훌륭한 작품을 발표하지 못한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라는 그의 작품 속의 주인공 산티아고 영감이 보란 듯이 엄청난 청새치와의 사투 끝에 물고기를 잡은 것처럼 본 작품으로 그의 작가성을 증명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는 산티아고 영감의 말이 잔잔한 여운으로 남는다. 그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는 어부로 태어난 그의 삶을 긍정하며 받아들이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산다. 비록 몸은 늙었지만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는 산타아고의 삶에서 나는 인간의 위대함을 본다.
겸손함이 몸에 새겨진 그는 사람들의 비난의 말에도 흔들림이 없다. 그들의 말이 그의 가치를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을 몸으로 터특한 삶의 지혜가 아닐까? 또한 경제적으로 궁핍함에도 불구하고 산티아고는 돈을 빌리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는 처음에는 부탁을 하지만 나중에는 구걸을 하게 된다는 그의 삶의 철학을 담고 있는 말이다. 작품의 클라이맥스에 청새치와 대화를 나누는 그의 모습은 비록 경쟁자이지만 존중하고 친구로 대하는 그의 열린 태도를 보여주며,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 자연과 화목해야 함을 나타내는 듯하다. 그는 비단 생명체뿐만이 아니라 모든 자연, 그러니까 바다와 하늘과 구름과 바람과도 대화를 나눈다. 청새치를 잡고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들의 습격을 받게 되고, 그 결과 청새치의 모든 살은 없어지고 앙상하게 뼈만 남게 된다. 결과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남은 것이 하나도 없고 헛수고만 한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며 이 모든 의미 있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산티아고는 자연과 대면하고 승리한 또 다른 존재로 거듭난다. 우리네 인생이 결국엔 죽음이라는 심연으로 사라지게 되지만 그럼에도 시지프스적인 삶을 살아가는, 지루하고 반복한 일상의 삶이지만 지치지 아니하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파멸하더라도 자신의 길을 가는 인간의 숭고함을 담고 있는 작품인 것 같다.
관계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노인과 바다는 사회적인 존재로서 인간이 함께 할 때 삶의 기쁨과 의미를 찾게 됨을 알려준다. 산티아고 영감에게는 그를 돌봐주고 존중해주고 인정해주는 마놀린이 있다. 나를 진정으로 알아주는 단 한사람의 친구가 있다면 그에게 삶은 의미로 충만할 것이다. 그 한 사람이 없어서 고통 중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숱한 사람들이 그 단 한 사람이 없어서 절망하며 삶을 잃어간다. 그런 면에서 보면 산티아고 영감은 행복한 사람이다. 고독 중에 홀로 위험을 감수하고 몸과 맘이 완전히 지치고 탈진하여 집으로 돌아온 산티아고 곁에는 마놀린이 있다. 그는 이전에 어린 마놀린이 함께 낚시하러 가자고 할 때 수용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다음에 함께 낚시하러 가자는 말을 어느 정도 허용하게 된다. 태도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홀로 사투를 벌이면서 '그 아이가 옆에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라는 말을 후렴구처럼 반복하였으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얼마나 고독하였겠는가!
노인과 바다를 읽으면서 많은 도전을 받았다. 늙었고 주위 사람들이 더 이상 운이 따라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낙인까지 찍었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아니하고 다시 도전하는 그의 용기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때때로 아직 기회가 있고, 주위 사람들이 하면 잘할 수 있을것이라는 격려와 긍정의 말을 부어주는데도 스스로 움추러드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핑계를 만들고 회피하는데 익숙해져 버린 것일까?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아니 어쩌면 내가 정말로 두려운 것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또한 산티아고 영감은 자신의 적과 싸우지만, 그러면서도 그를 친구로 대하며 끌어 안을 수 있었다. 그에게 적은 친구였던 것이다. 그와 대결 할 수 있는, 그리고 그를 강하게 하는 그런 친구이다. 모든 불가능성에서도 가능을 향해 나아가는, 건진 것은 전혀 없더라도 그로 인해 다시 희망을 갖게 되는 산티아고의 도전정신이, 그의 힘에의 의자가 나에게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2018년 12월